9월 13일 일요일담담
비워둔 종이와 따라오는 그림
오늘도 작업이 좀 막혀서 작업실 뒤 골목을 걸었다. 40분쯤 걷다 돌아와 옥탑 창 세 개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있으면, 막혔던 벽이 아주 얇은 종이처럼 느껴지곤 한다.
오늘도 작업실 골목을 걷다가 돌아왔다. 옥탑 창 세 개로 들어오는 빛이 조금씩 기울 때쯤, 더 바라보고 있다간 그림이 영 멀어질 것 같아 그냥 붓을 잡았다. 완전하지 않아도 끝났다고 치고 그은 첫 선이, 벽 같던 마음을 아주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어두워진 자리가 보일 땐 선을 더 얹기보다 색을 덜어내거나 빈 곳을 남겨본다. 다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한 겹 벗겨지면, 그림에도 나에게도 숨을 쉴 자리가 조금은 생기는 기분이다. 오늘은 다 마쳤다고 하기보다 그저 여기까지 해둔 채 작업실 문을 나섰다.
종이 위에 조용히 남겨둔 그림이 밤길 뒤를 따라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