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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편
되는 이유를 찾으려다 왜 안 되는지 모르는 2년
왜 되는지 모르는 채로 일하기 싫어서 시작을 늦추고 석사를 골랐다. 취업하면 바로 시작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는 채로 일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돌아서서 석사를 선택했다.
글씨가 좀 엄마 같았던 것 같아
냉장고를 열 때마다 예전 생각이 난다. 반찬통에 붙어 있던 작은 메모 같은 게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다. 역 승강장에서 엄마가 돌아서며 들어가라고 했을 때, 나는 괜히 엄마 가방 손잡이만 보고 있었다. 손잡이의 닳고 까진 부분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엄마가 기차를 타고 멀어진다는 사실이 조금은 늦게 찾아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커피 만들고 사람들 만나는 사람이야
매일 하는 일을 아이한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참 크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유나가 다섯 살 때 엄마 회사가 뭐냐고 물어봤다. 내가 다니는 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 주에 사표를 내고 카페를 차렸다. 가게 이름을 물었더니 유나가 딸기라고 하길래 딸기상점이 됐다. 정작 딸기는 안 파는 집이지만 유나가 지어준 이름이라 바꿀 수가 없다.
참깨가 오면 일단 배포 보류
대표는 3년째 내년에 서른 명이 된다고 하지만, 회사 인원은 여전히 열두 명 근처다. 작은 규모가 딱히 싫지는 않다. 오늘 인원수를 또 세어봤다. 백엔드는 시니어와 나 둘뿐. 배포를 마치고 다음 날 실제 처리된 심부름 건수를 세는 쪽이 더 직관적이다.
좋은 순간은 잠깐 좋아하고 흘려보내는 편
좋았던 순간도 너무 붙잡고 있으면 다음 날 출근이 더 힘들어져서, 그냥 잠깐 기뻐하다 흘려보내곤 한다. 지하철에서 누가 내가 쓴 「피부는 오늘을 기억해요」 광고를 찍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괜히 민망해서 그만뒀는데, 퇴근길 내내 혼자 조금 들떴다. 진짜 쓰이는 문장을 썼구나 싶어서 잠깐 진짜 좋았다.
40분 걸리던 밤, 27분 달리는 저녁
오늘 이력서를 열었다가 맨 첫 줄에서 한참을 멈췄다. 3년 전 정산 배치 이야기. 밤마다 40분씩 걸리던 작업을 석 달 동안 쿼리 뜯어가며 6분으로 줄였다. 당직이 사라졌지만 회고 때는 한 줄 적히고 끝이었다.
들어올 날씨를 남겨두는 종이
빛을 그리고 싶으면 그늘을 먼저 놓아야 하는 날들이 있다. 금요일 오후 메일함의 날씨가 흐려질 때면 작업실 뒷골목으로 나선다. 목적도 없이 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에 걸린 그림자 자리에 서서 빛이 들어온 자리를 되짚어보곤 한다.
알면서도 입에 먼저 붙는 말이 있어
아는 이름 대신 입에 붙은 호수가 먼저 나가는 날이 있다. 오늘 인계하다가 또 12호실 창가라고 불렀다. 이름을 알면서도 입에 붙은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시안이 몸에 내장된 아침 알람
아침 알람은 필요가 없다. 내 몸이 아니라 시안이 몸에 시계가 달린 것 같으니까. 오늘도 6시 12분에 딱 맞춰 깼다. 눈은 떠져 있는데 머리는 베개에 묻은 채로 “엄마 일어났어?” 하고 먼저 말을 건넨다. 그러고는 1분 동안 얼굴 반쯤 묻고 눈만 깜빡거리다가 벌떡 일어난다.
슬랙, 안 봐도 아무 일 없더라
3년 만에 처음으로 슬랙 스물세 개를 안 읽고 넘겼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 참깨가 밥을 안 먹어서 야간 동물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에 알림 스물세 개가 쌓였지만 안 봤다. 다음 날 확인해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
수영장에서 혼자 회의하는 기분이랄까
수영장에서 혼자 회의를 열심히 하다 나온 날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마음 혼자서 바빴다. 어느 날 옆 레인 할아버지가 접영은 안 하냐고 물어보셨다. 자유형이 좋아서 그렇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다른 걸 못 해서였다. 그 뒤로는 괜히 접영 실기시험을 보는 기분이 들어 그분 오실 것 같은 시간대를 살짝 피해서 다닌다.
한 잔도 못 팔았는데 제일 좋은 날이었어
장사를 잘한 날은 아닌데, 가게를 왜 열었는지는 알 것 같은 날이 있다. 지난 여름 동네 전체 정전이 돼서 머신도 멈추고 손님 네 분만 남아 있었던 날을 기억한다. 환불해 드리려는데 한 분이 "그냥 앉아 있어도 돼요?" 하셨다. 촛불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눴다. 전기가 돌아왔을 때도 아무도 바로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커피는 한 잔도 못 팔았지만 제일 좋은 날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돼
실험 결과는 그대로인데, 누군가의 한마디에 하루를 다 마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새벽에 편의점에 갔더니 직원분이 「오늘은 됐어요?」라고 물었다. 실험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내 얼굴을 보고 아는 것 같았다. 「네, 오늘은」 하고 대답하며 삼각김밥을 들고 나왔다. 집에 들어오는 길이 평소보다 조금 덜 늦게 느껴졌다.
하루가 전부 결제 오류만은 아니었어
화면을 끄고 나서도 글자 모양이 잠깐 남아 있는 것처럼, 자꾸만 다시 보게 되는 불빛 같은 문장이 있다. 오늘 처리할 일도 없는 문의함을 괜히 다시 들여다봤다. 똑같이 결제 오류 문의만 사십 건 넘게 들어오던 목록 사이에서 「강의 듣고 처음으로 뭔가 해낸 것 같아요, 감사해요」라는 문장 하나가 즐겨찾기 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드린 것도 별로 없어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답장만 보냈는데, 그 짧은 줄 아래에 켜진 글자가 꼭 컴컴한 방 안의 냉장고 불빛처럼 계속 번져 보였다.
결과가 나와야 말할 수 있으니까
결과도 없는데 미리 말하면 좀 번거롭다. 그냥 정해지면 말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결과 나오면 부모님께 말하려고 한다. 아직은 안 했다. 5년 전 입사 때도 최종 합격 문자를 받고 나서야 말씀드렸다.
새벽 3시 컵라면으로 건너가는 밤
새벽 3시에 컵라면을 먹고 나면 밤의 중간을 지난다. 새벽 3시 전까지는 시간이 길고 자꾸 시계에 눈이 간다. 라면을 하나 비우고 나면 이상하게 몸이 좀 덜 무거워진다. 그때부터는 시간을 안 보고 라운딩을 돌며 기록을 붙잡는다.
색이 어디로 가는지 기다려
오랫동안 나무는 정해진 색으로만 칠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나의 색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된 날부터 종이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가 그려둔 보라색 나무를 떠올린 뒤로는 한동안 선뜻 색을 정하지 못했다. 종이 위에 연필로 옅게 선을 그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작업실 뒷골목을 한참 걷다 돌아와도 바로 붓을 들지 못했다.
탐정 놀이 마치면 등원 작전이야
아침 8시 30분만 되면 집 안이 수사 현장이자 작전 구역으로 변한다. 오늘 사라진 양말 한 짝은 화분 뒤에서 찾았다. 시안이에게 도토리가 숨긴 거냐고 물으니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도토리 탓을 하더라. 저보다 설정에 진심이라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두 번이나 죽을 뻔했던 창가의 화분이 아직 잘 살아 있다. 개업하고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물 주는 걸 며칠씩 잊어 잎을 축 처지게 만들더니, 다음엔 급한 마음에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화분을 또 힘들어하게 했다. 그러다 잎이 축 처질 때마다 흙을 만져봤다. 바싹 말라 있으면 물을 조금씩 주고, 너무 젖어 있으면 그냥 기다렸다. 매일 정성껏 보살핀 것도 아니고 창가를 닦다가 잎이 눈에 밟히면 물을 줬을 뿐인데 그렇게 살아났다.
내 글에 내가 먼저 『왜?』를 붙이는 편
교수님의 빨간 펜에서 시작된 질문이 지금의 작업 방식을 만들었다. 논문을 쓸 때 빨간 펜으로 『왜?』가 열네 개 적혀 돌아왔던 적이 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하나씩 답을 적어 내려갔다. 서론이 두 배로 늘어났지만 적어도 내가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