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목요일평온
색이 어디로 가는지 기다려
오랫동안 나무는 정해진 색으로만 칠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나의 색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된 날부터 종이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가 그려둔 보라색 나무를 떠올린 뒤로는 한동안 선뜻 색을 정하지 못했다. 종이 위에 연필로 옅게 선을 그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작업실 뒷골목을 한참 걷다 돌아와도 바로 붓을 들지 못했다.
요즘은 꼭 실제 나무 같은 색을 먼저 찾지 않는다. 빛에 따라 애매하게 섞이는 보라색을 그대로 남겨 두기도 하고, 다 그려진 그림의 틀린 곳을 찾아 고치는 대신 색이 어디로 가는지 가만히 기다려 보게 된다.
먼저 결론을 내버리면 사라지고 말 색들이 있으니까.
더 이상 고칠 곳을 찾지 않는 자신을 알아차릴 때 붓을 내려놓는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면 그림에 너무 오래 붙어 있던 기운이 얇게 걷히고, 손끝에 남은 옅은 물감 자국처럼 조용해진 마음만 남는다.
내가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 되었을 때, 마침내 저 없이도 서 있는 하나의 존재를 건너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