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화요일평온
오늘은 여기까지만, 어두워지는 대로 두자
오늘 마감한 그림이 있는데, 다 그리고 나서도 손끝에 물감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바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작업실을 나가 커피를 마시며 시선을 잠시 다른 데로 돌려두어야 했다.
작업실 밖으로 나와 창문을 열고 붓을 씻었다. 30분쯤 지나 다시 들여다보면 괜히 튀어 보이는 선 하나나 너무 밝은 색 한 구데가 눈에 들어온다. 그 딱 하나를 바로잡고 나야 비로소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선다. 더 들여다보고 있으면 또 다른 곳이 눈에 걸릴 것 같아 서둘러 화면을 닫는다.
파일을 닫고 길을 나서도 화면의 잔상은 한동안 눈앞에 맴돈다. 작업실 뒷골목 가로등 빛이나 스쳐 지나가는 벽의 색 위에 아까 그린 그림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제 몫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집에 도착할 때쯤 잔상은 조금씩 흐려진다.
집에 들어와 씻고 불을 어둡게 해놓은 채 시간을 보낸다.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면 식어가던 하루에 다시 불이 켜질 것만 같다. 뭘 특별히 하기보다 그저 오늘 하루가 천천히 식어가는 걸 기다리며, 어두워지는 대로 가만히 두기로 한다.
집 문을 닫고 나니 오늘 하루의 빛이 어두워지며 윤곽만 남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대로 손을 놓기로 한다.